
오늘은 씨름의 유래가 궁금해서 하나하나 찾아봤어요. 씨름이 정확히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 고분에 그 흔적이 남아 있고 문헌 기록은 충혜왕 때 집중되어 있더라고요.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넘어뜨리는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 그 뿌리를 차근히 정리해 볼게요 🙂
씨름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가리는 우리나라 전통의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예요. 모래판 위에서 상대방의 허리띠(샅바)나 허리춤을 잡고 쓰러뜨리는 방식이고요.
저는 씨름을 그냥 힘 대결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훨씬 정교한 운동이더라고요. 손기술, 다리기술, 허리기술, 혼합기술처럼 온몸을 움직여 힘과 기술을 겨루는 종목이거든요. 체력, 기술, 투지라는 세 가지 조건이 함께 요구되는 운동이라 무예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받아요.
무엇보다 씨름은 우리나라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순수 우리 경기로 꼽힙니다. 어디에서 들여온 놀이가 아니라 이 땅에서 자라난 신체운동이라는 점이 씨름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설명이에요.
치우희, 각저지희, 각희: 이름에 담긴 뿔 이야기
씨름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옛 이름들은 뿔에서 왔어요. 중국 문헌 소씨연의(蘇氏演義)에는 치우희(蚩尤戱), 각저지희(角觝之戱, 角抵之戱), 각희(角戱)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들의 배경에는 전설시대 인물인 치우가 있어요. 치우는 머리에 뿔[角]이 나 있어서, 사람들을 뿔로 들이받으면 겁이 나고 당할 수가 없어 힘을 겨루지 못했다고 해요. 그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 바로 치우희입니다.
후세에 기주(冀州) 지방 풍속에서는 치우처럼 머리에 뿔을 달고 둘씩 셋씩 한 편이 되어 서로 힘을 겨루는 놀이를 즐겼어요. 이 놀이를 치우희라 불렀고, 뿔을 달고 했다고 해서 각저지희 또는 각희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름 자체가 뿔을 맞대고 겨루는 장면을 그대로 담고 있는 셈이에요.
잘 모르는 사실: 옛 중국 문헌은 우리 씨름을 따로 불렀어요
옛 중국 문헌에서는 우리의 씨름을 고려기(高麗技) 또는 요교(撩跤)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어요. 같은 이름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따로 이름을 붙였다는 건, 우리 씨름이 중국의 것과 다른 특징을 지녔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거든요.
요교라는 말을 뜯어보면 뜻이 더 선명해집니다. '요'는 붙든다는 뜻이고, '교'는 종아리 교자예요. 합치면 종아리(다리)를 붙들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놀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름 하나에 우리 씨름의 기술적 특성이 그대로 요약되어 있는 거죠.
비교적 가까운 기록도 있어요. 1921년에 최영년은 씨름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각저희(角觝戱)라는 칠언절구 한시로 표현했습니다. 씨름이 문헌 속 놀이에 머물지 않고 오래도록 시로 읊어질 만큼 생생한 볼거리였다는 이야기예요.
왼씨름만 남기까지, 씨름의 종류
씨름은 원래 한 가지 방식이 아니었어요. 왼씨름과 오른씨름, 띠씨름 등 다양한 방식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왼씨름 한 가지만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보는 씨름 한 판이 처음부터 그 모습이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여러 갈래가 있다가 하나로 정리된 결과였다는 점이 새롭더라고요. 잡는 방식과 겨루는 방식이 여럿이었다는 건 그만큼 지역과 시대에 따라 씨름이 다르게 즐겨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기록으로 짚어 보는 씨름의 흐름
씨름과 관련해 확인되는 기록들을 시대순으로 짚어 볼게요.
- 시작 시점: 씨름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고려시대: 고려 시대 고분에 씨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 고려시대 문헌: 씨름에 관한 기록은 모두 충혜왕 때의 것이며, 노는 것을 좋아하던 충혜왕이 특히 씨름을 즐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1921년: 최영년이 씨름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각저희(角觝戱)라는 칠언절구 한시로 남겼습니다.
기록이 한 임금 대에 몰려 있다는 점이 저는 인상적이었어요. 씨름을 유난히 좋아한 왕이 있었기에 그 시절의 장면이 문헌에 또렷하게 남은 셈이니까요.
세시풍속으로서 씨름이 지닌 의미
씨름은 농사와 관련된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은 놀이입니다. 우리 민속놀이의 대표격으로, 씨름꾼과 구경꾼이 하나가 되어 즐겨온 세시풍속이기도 해요.
씨름의 성격을 보면 이 점이 더 잘 드러납니다. 씨름은 형식만 놓고 보면 둘이 맞붙는 개인 경기지만, 한민족 특유의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오랜 역사 속에서 전승된 민속놀이이자 공동체 놀이예요. 판 위에 선 사람은 둘이어도 그 판을 만드는 건 둘러선 모두였던 거죠.
우리 민속씨름에는 싸움을 뜻하는 전투성과 흥이 함께 담겨 있다고 해요. 저는 이 두 가지가 나란히 놓인다는 점이 씨름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느꼈어요. 이기고 지는 진지한 겨룸이면서 동시에 다 같이 즐기는 흥의 자리였으니까요.
찾아보고 나니 씨름 한 판에 뿔을 맞대던 옛 이름부터 공동체가 함께 즐긴 세시풍속까지 겹겹이 담겨 있다는 게 새삼 흥미로웠어요. 다음에 모래판 위 씨름을 볼 때는 조금 다르게 보일 것 같아요. 오늘 글이 도움이 됐길 바라요 😊
자주 묻는 질문
씨름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씨름은 우리나라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순수 우리 경기로,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넘어뜨리는 전통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입니다.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치우희, 각저지희, 각희라는 이름은 머리에 뿔이 난 치우의 전설과, 뿔을 달고 힘을 겨루던 기주 지방 풍속에서 비롯된 말이에요.
씨름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씨름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고려 시대 고분에 씨름의 흔적이 남아 있고, 고려시대의 씨름 기록은 모두 충혜왕 때의 것으로 확인됩니다. 노는 것을 좋아하던 충혜왕이 특히 씨름을 즐겼다는 사실을 그 기록에서 알 수 있어요.
옛 중국 문헌에서 우리 씨름을 뭐라고 불렀나요?
고려기(高麗技) 또는 요교(撩跤)라고 불렀습니다. 요교의 '요'는 붙든다는 뜻이고 '교'는 종아리 교자여서, 종아리(다리)를 붙들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놀이라는 뜻이 됩니다. 따로 이름을 붙였다는 건 우리 씨름이 중국의 것과 다른 특징을 지녔음을 시사해요.
씨름에는 어떤 종류가 있었나요?
원래는 왼씨름과 오른씨름, 띠씨름 등 다양한 방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왼씨름 한 가지만 남게 되었어요.
씨름이 세시풍속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씨름은 농사와 관련된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은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속놀이의 대표격으로 씨름꾼과 구경꾼이 하나가 되어 즐겨온 세시풍속이고, 형식은 개인 경기지만 한민족 특유의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전승된 공동체 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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