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마는 1763년(영조 39)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간 조엄이 대마도(쓰시마)에서 고구마를 보고 부산으로 종자를 보내면서 우리 땅에 본격적으로 들어왔어요. '고구마'라는 이름도 쓰시마에서 부르던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데서 생겨났다고 해요. 매일 먹는 고구마가 어디서 와서 왜 이런 이름을 얻었는지 궁금해서 저는 하나씩 찾아봤어요 🍠
고구마는 어디서 와서 어떻게 조선까지 왔을까
고구마의 원산지는 멕시코와 중남미 지역이에요. 고구마는 16세기 초반 대항해시대에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고, 16세기 후반에는 스페인에 의해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으로 건너간 뒤 아시아 각국으로 퍼져 나갔어요.
고구마가 조선에 닿기까지의 길은 꽤 멀었어요. 제가 알아보니 필리핀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유구(류큐)로, 다시 일본의 대마도를 거쳐 조선에 전래되었더라고요.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고구마를 들여왔고, 재배는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됐어요.
고구마라는 존재 자체는 조금 더 일찍 알려졌어요. 1600년대 중엽부터 일본에 표착한 어민이나 통신사들을 통해 고구마 이야기가 조선에 전해졌지만, 실제로 재배를 시작한 것은 1700년대 후반부터였어요.
1763년 조엄이 보낸 종자, 부산 영도에서 시작된 첫 재배
조선에서 고구마 재배의 출발점은 조엄이 1763년 대마도에서 부산으로 보낸 고구마 종자예요. 조엄은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건너가는 길에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보았고, 구황작물로서의 가치를 알아보고 종자를 부산에 보냈어요.
종자가 도착한 이듬해 봄, 부산진 첨사 이응혁이 절영도(지금의 부산 영도)에서 시험 재배를 시작했어요. 1765년에는 동래 부사 강필리가 고구마 재배에 관심을 기울였고, 특히 강필리는 『감저보(甘藷譜)』라는 책을 써서 고구마 보급에 공헌했어요. 그 뒤로 고구마는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고, 관련 책들도 이어서 나왔어요.
흩어진 연도만 따로 모아 두면 이렇게 정리돼요.
- 16세기 초반: 콜럼버스를 통해 유럽에 전래
- 16세기 후반: 스페인을 통해 필리핀, 이어서 아시아로
- 1600년대 중엽: 조선에 존재가 알려짐
- 1763년(영조 39): 조엄, 대마도에서 부산으로 종자 발송
- 1764년 봄: 이응혁, 절영도(부산 영도)에서 시험 재배
- 1765년: 강필리, 『감저보』 저술
- 1798년(정조 22): 정석유, 상소로 재배 권장
- 1813년: 김장순, 『감저신보(甘藷新譜)』 저술
- 1834년: 서유구, 『종저보(種藷譜)』 저술
고구마가 구황작물로 빠르게 자리 잡은 이유
고구마가 짧은 시간 안에 널리 퍼진 이유는 굶주림을 막아 주는 구황작물로 아주 적합했기 때문이에요. 고구마는 가뭄이나 해충 피해를 잘 받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서 곡물 농사에 지장을 주지 않았어요. 게다가 맛이 좋고 수확량도 많았어요.
고구마의 위상은 1798년(정조 22) 정석유의 상소에서 잘 드러나요. 정석유는 고구마가 구황에 제일이라며 재배를 권장했는데, 조엄이 종자를 보낸 지 30여 년 만에 고구마가 구황작물로서 자리를 굳혀 가고 있었다는 걸 보여 주는 대목이에요.
고구마가 조선에서 주요 농작물이 된 데에는 사람들의 노력도 컸어요. 구황작물로서 뛰어난 가치를 내다본 여러 선각자들이 고구마를 들여오고 시험 재배에 성공했고, 이후 전국적으로 보급이 장려되었어요.
'고구마'라는 이름에 담긴 효자 이야기
'고구마'라는 이름은 쓰시마 사람들이 고구마를 부르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데서 유래했어요. 조엄이 일본에 머물며 쓴 『해사일기』에는 쓰시마에서 고구마를 '고귀위마'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쓰시마에서 고구마를 그렇게 부른 데에는 사연이 있었어요. 에도시대 중기에 쓰시마에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하라다 사부로에몬이라는 사람이 사쓰마 번에서 가져온 고구마가 기근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래서 쓰시마에서는 고구마를 기근을 해소해 준 효성스러운 작물이라는 뜻으로 '고코이모(孝行芋)'라고 부르고,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고 해요.
조선 쪽 기록에는 고구마를 효자마(孝子麻)라고도 했다고 나와요.
'고코이모'가 '고구마'가 된 과정도 흥미로워요. '고코'에 식물 '마'가 합쳐지면서 고코이모→고귀이마→고구마로 바뀌었어요. 고구마라는 이름은 한글 이름이지만 이런 사연 때문에 일종의 귀화어로 보기도 해요.
이름에 효(孝)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만 봐도, 고구마가 당시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구해 준 고마운 작물이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고구마 이름의 유래에는 다른 주장도 있어요. 고구마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전라도 고금도에서 많이 재배해서 그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에요. 저는 두 가지 주장이 함께 이야기된다는 점도 같이 알아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고구마의 원래 이름은 감자였다?
고구마의 옛 이름은 '감저(甘藷)'였고, 조선시대에 가장 흔하게 쓰인 이름도 감저였어요. 감저는 단맛이 나는 덩이줄기라는 뜻으로, 본초강목 같은 중국 의서에 기록된 이름이에요. 조엄 선생이 들여온 뿌리채소라는 뜻의 '조저(趙藷)'라는 이름도 있었어요.
감저라는 이름은 감자가 들어오면서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감자와 고구마는 모두 중남미가 원산인 외래작물이고 둘 다 조선 후기에 들어왔는데, 고구마는 일본을 거쳐, 감자는 그 뒤에 중국을 통해 들어왔어요. 들어올 당시에는 두 작물의 이름이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아서, 고구마는 남쪽에서 왔다고 남감저(南甘藷), 감자는 북쪽에서 왔다고 북감저(北甘藷) 또는 북저(北藷)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결국 '감저'라는 이름은 현대의 감자가 가져가게 되었어요. 감자와 고구마는 엄연히 다른 작물이라 이름을 나눌 필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감저가 감자의 이름이 된 거예요. 조선 후기 책인 『해동농서』의 감저조, 『감저보』, 『감저신보』가 이름과 달리 모두 고구마 재배 전문서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고구마가 감자에게 이름을 빼앗겼다는 말이 실감 나더라고요.
잘 모르는 고구마 이야기
고구마는 『동의보감』에 나오지 않아요. 감자와 고구마는 명나라 때 편찬된 본초강목에는 등장하지만, 그 뒤에 쓰인 동의보감에는 실려 있지 않은데, 동의보감을 편찬할 당시 조선에는 감자와 고구마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조엄이 고구마 이름을 옮길 때 고른 한자에도 재미있는 고민이 담겨 있어요. 일본어 '이모(芋)'는 덩이줄기 식물 전반을 가리키는 말인데, 조엄은 이 부분을 옮기면서 식물 '마'를 뜻하는 글자를 넣어 최대한 뜻이 통하게 했대요.
일본에서 고구마의 역사는 류큐왕국(지금의 오키나와)에서 시작됐어요. 일본에서는 1605년 류큐왕국의 노쿠니 총관이 중국에서 고구마를 들여와 재배하면서 고구마 재배 역사가 시작되었고, 류큐에서는 중국에서 왔다는 뜻으로 '가라이모(唐芋)'라고 불렀어요. 고구마는 곧 류큐 전역에서 주요 식량이 되었고, 류큐 왕실은 노쿠니 총관의 공을 기려 그의 후손들에게 사무라이 신분을 주었다고 해요.
이후 1615년 쓰가와라는 사람이 오키나와에서 고구마를 들여와 사쓰마 번에 심었고, 혼슈 지역은 1731년부터 고구마를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고구마는 먹는 부위도 감자와 달라요. 감자는 줄기를 먹지만 고구마는 뿌리를 먹고, 고구마처럼 영양분이 쌓여 둥글게 커진 뿌리를 덩이뿌리라고 불러요. 고구마는 메꽃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 꽃이 나팔꽃과 비슷하고, 영어로는 '스위트 포테이토(sweet potato)'라고 해요.
쓰시마의 기근을 구한 효자 작물이 조엄의 손을 거쳐 부산 영도에서 첫 싹을 틔웠다는 걸 알고 나니 고구마가 새삼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오늘 이야기가 고구마 한 개 드실 때 작은 재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자주 묻는 질문
조엄 이전에는 조선 사람들이 고구마를 전혀 몰랐나요?
알고는 있었어요. 17세기 중반 무렵 이미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런 작물이 있다는 소식 정도는 들어와 있었거든요. 직접 땅에 심어 기른 건 조엄의 종자가 도착한 뒤의 일이에요.
고구마 이름이 전라도 고금도에서 왔다는 말은 사실인가요?
그런 설이 있긴 하지만, 쓰시마 이름에서 왔다는 설과 함께 전해지고 있어서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긴 어려워요. 쓰시마 쪽 설은 조엄이 『해사일기』에 남긴 '고귀위마'라는 기록이 뒷받침해 줘요.
감자와 고구마는 같은 경로로 들어왔나요?
아니에요. 고구마는 일본 쪽에서 먼저, 감자는 조금 늦게 중국 쪽에서 들어왔어요. 들어온 방향이 이름에도 남아서 한때 남감저, 북감저로 나눠 부르기도 했죠.
동의보감에서 고구마 효능을 찾을 수 있나요?
찾을 수 없어요. 동의보감이 만들어질 무렵에는 고구마가 아직 조선에 들어오기 전이었거든요. 옛 기록을 보고 싶다면 명나라 의서인 본초강목을 찾아보시면 돼요.
일본에서는 고구마를 언제부터 재배했나요?
시작은 1605년 류큐왕국이에요. 10년 뒤인 1615년에 사쓰마 번으로 건너갔고, 혼슈에서 재배가 시작된 건 1731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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